"연금술사". 중고등학생 때 학생 추천 도서 목록에 빠짐없이 등장했었던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 한 번도 펼쳐 보지 않았지만 왠지 친숙하게 느껴지는 책입니다. 그런 책을 10년이 거진 다 지나서야 비로소 펼쳐 볼 마음을 먹게 된 것은 부끄럽기 그지 없군요.
다 읽어 보니, 학생 추천 도서에 단골로 등장하는 이유가 있더군요. 힘을 주는 좋은 책이었습니다.
-줄거리-
주인공, 산티아고는 스페인 남단인 타리파 지방을 떠도는 양치기입니다.
썩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수중의 양을 거느리며 그들을 말동무로, 밤하늘의 별을 이불로 삼아, 자유롭게 떠도는 양치기입니다.
산티아고는 평원 위의 다 쓰러져 가는 교회 건물 안으로 양떼를 몰아 넣고는, 성물 보관소에 자라난 무화과나무 아래서 잠을 청합니다. 꿈 속에는 한 어린아이가 나타났습니다. 어린아이는 산티아고를 피라미드로 데려와서는 이곳에서 보물을 찾을 수 있을 거라 말했습니다.
오묘한 표정과 함께 잠에서 깨는 산티아고. 사실 이 꿈은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타리파 광장에서 꿈의 내용에 관해서 고민하고 있던 산티아고에게 한 노인이 다가옵니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 일명 "자아의 신화"를 위해 인생을 사는 이들 앞에 나타나 도움을 준다는 그 노인은, 산티아고의 고민을 꿰뚫고 있는 듯했죠.
노인은 산티아고에게 제안을 하나 합니다. 지금 가진 양떼의 10분의 1을 준다면 보물을 찾는 것을 도와준다고 말이죠.
말 하지도 않았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모두 다 알고 있는 이 노인에게서 비범함을 느낀 산티아고는 그 제안을 받아 들였고, 모험 자금 마련을 위하여 자신이 가진 양떼 전부를 팔아 치웁니다.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노인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되뇌며, 산티아고는 아프리카로 떠납니다. 하지만 아뿔싸. 산티아고는 아프리카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사기꾼에게 속아 모든 돈을 도둑맞게 됩니다.
모험을 떠난 것을 땅을 치고 후회하고, 돌아갈 여비와 양떼를 살 돈을 벌고자 산티아고는 근처 크리스탈 가게의 종업원으로 일을 시작합니다.
가게 주인은 정말 수동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메카에 성지순례를 가는 것이 일평생의 꿈이지만, 그 꿈을 실현시킬 용기도 의지도 없이 꿈을 그저 꿈으로만 품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그의 성격은 삶의 태도 전반에 묻어 나와, 가게에 파리만 날리고 있음에도 그 어떤 변화나 혁신을 주지 못한 채 손을 놓고 있었습니다. 산티아고는 그런 주인을 대신해 가게에 변화와 혁신을 주었고, 가게는 대성하게 됩니다.
벌써 반 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산티아고는 집으로 돌아갈 여비는 물론이거니와 이전보다 더 많은 양떼를 거느릴 수 있는 돈을 벌었습니다.
난 내가 왜 양들에게 돌아가기를 원하는지 알아. 난 양들을 알아. 양들은 내게 많은 일을 요구하지 않고, 난 양들을 좋아하지. 사막도 좋아질지는 알 수 없지만, 그곳엔 나의 보물이 숨겨져 있어. 설사 보물을 찾지 못한다 해도 언제고 집으로 돌아갈 수는 있을 거야. 내 인생이 내게 또 한번 이렇게 충분한 돈을 주었고, 필요한 시간도 있는데, 못 할 게 뭐 있겠어?
그러나 산티아고는 중단했던 모험을 계속하기로 결심합니다. 스페인 양치기로서의 삶은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선택지였기 때문이죠.
이집트의 피라미드로 가기 위해서는 대사막을 횡단해야 했습니다. 산티아고는 오아시스로 떠나는 대상 행렬에 합류하여 그들과 함께 사막을 횡단키로 합니다.
대상 행렬에는 한 영국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오랜 기간 연금술을 공부했으며 깨달음을 얻기 위해 오아시스에 산다는 전설의 연금술사를 찾아 나서기 위한 모험을 떠나고 있는 중이었죠.
산티아고는 만물의 정기를 관통하는 우주의 언어를 읽어내며 보물로 도달하려 했고, 영국인은 암호와 같이 난해한 연금술 서적을 연구하며 연금술을 통달하려 했죠. 하지만 그 둘은 모두 자아의 신화를 살아내는 인물이었습니다.
대상 행렬은 결국 오아시스에 도착했지만, 부족 간 전쟁이 발발하여 중립지대인 오아시스에 발이 묶여버렸습니다. 오랫동안 오아시스에 머물며 산티아고는 운명의 상대, 파티마를 만납니다.
그는 양떼 백 마리 이상을 거느릴 수 있는 돈과 금화, 사랑하는 여자를 찾았습니다. 모험을 포기하고 그녀와 행복한 생활을 보내려는 산티아고의 생각에, 파티마는 동의하지 않는 듯합니다.
이제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요. 당신을 내게 데려다준 것이 바로 그 표지들이었으니까요. 나는 당신 꿈의 일부이고, 당신이 자주 얘기하는 자아의 신화의 일부이기도 해요.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당신이 여행을 계속하길 원해요. 당신이 찾는 그곳으로 말예요. 만일 전쟁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면 그렇게 하세요. 하지만 그 전에 떠나야 한다면 당신의 신화를 향해 떠나세요. 사막의 모래언덕은 바람에 따라 변하지만, 사막은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랍니다. 우리의 사랑도 사막과 같을 거예요.
마크툽. 모든 것은 신에 의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산티아고는 언젠가 자아의 신화를 찾아 떠나야 할 것입니다. 자신이 운명의 상대라면 자신을 만난 것은 그의 자아의 신화의 일부이며, 그렇다는 것은 필경 그는 자신에게 다시 올아오게 될 것이니 자신은 굳게 기다리겠다고.
파티마는 말했습니다.
혼란스러워 방황하는 산티아고의 앞에 전설의 연금술사가 나타납니다. 그 또한 자아의 신화를 살아냈던 비범한 인물이었습니다.
명심하게. 사랑은 어떤 경우에도, 자아의 신화를 찾아가는 한 남자의 길을 가로막는 것이 아니네.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만물의 언어를 말하는 사랑, 진정한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지.
(중략)
내가 때때로 불평하는 건, 내가 인간의 마음이기 때문이야. 인간의 마음이란 그런 것이지. 인간의 마음은 정작 가장 큰 꿈들이 이루어지는 걸 두려워해. 자기는 그걸 이룰 자격이 없거나 아예 이룰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지. 우리들, 인간의 마음은 영원히 사라져버린 사랑이나 잘 될 수 있었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던 순간들, 어쩌면 발견할 수 있었는데 영원히 모래 속에 묻혀버린 보물 같은 것들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두려워서 죽을 지경이야. 왜냐하면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우리는 아주 고통받을 테니까.
연금술사는 이미 가진 것에 대한 두려움, 포기한 것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인한 동요는 바로 마음이 살아있는 증거이며, 당연한 일이라고, 그렇치만 마음의 동요가 자신을 덮쳐버리지 않도록 그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연금술사는 산티아고와 함께 남은 사막을 횡단하기로 했고, 시간이 갈수록 산티아고는 마음의 평정을 되찾아 편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온갖 우여곡절 끝에 산티아고는 피라미드에 당도하였습니다. 그의 눈 앞에 펼쳐진 피라미드는 까마득히 높고 거대해 경이로운 마음까지 드는 대단한 건축물이었습니다. 피라미드는 집마당에 널린 것이라고 보잘 것 없는 것이라고 들었다며 산티아고의 꿈을 일축하던 크리스탈 가게 주인의 말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산티아고는 피라미드 앞, 계시된 곳에서 삽을 들고 구덩이를 팠습니다. 그를 수상히 여긴 불량배들이 다가와 그를 흠씬 두들겨 팼습니다. 보물이 묻혔다는 산티아고의 말에 그들은 열심히 흙을 퍼날랐죠.
그치만 이게 왠 걸. 보물은 눈을 씻고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화난 불량배들은 산티아고를 더욱 두들겨 팼습니다. 그러면서 불량배 하나가 말했습니다.
-다시는 그렇게 바보처럼 살지 마. 지금 네가 쓰러져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나 역시 이 년 전쯤 같은 꿈을 두 번 꾼 적이 있지. 꿈 속에 스페인의 어떤 평원을 찾아갔는데, 거기 다 쓰러져 가는 교회가 하나 있었어. 근처 양치기들이 양떼를 몰고 와서 종종 잠을 자던 곳이었어. 그곳 성물 보관소에는 무화과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지. 나무 아래를 파보니 보물이 숨겨져 있지 않겠어. 하지만 이봐, 그런 꿈을 되풀이 꾸었다고 해서 사막을 건널 바보는 없어. 명심하라구.
그 말을 남기고 그는 무리와 함께 모래언덕 아래로 사라져버렸다.
산티아고는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는 보물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산티아고는 맨 처음 자신이 잠을 청하던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무화과나무 아래를 삽으로 파자, 얼마 지나지 않아 금은보화가 담긴 보물상자가 나타납니다. 보물은 바로 피라미드가 아닌 자신의 주변에 묻혀 있던 것이었습니다.
보물을 찾은 그에게 갑자기 익숙한 향기가 풍겨 오며 소설은 끝이 납니다.
산티아고에게 아무래도 진정한 보물은 교회 밑에서 파낸 금은보화가 아닌, 보물을 찾기 위해 떠난 모험에서 얻은 것인듯 싶습니다.
바람이 불어왔다. 아프리카로부터 오는 바람, 레반터였다. 그러나 거기에는 사막의 냄새도, 무어 족의 침략을 전하는 위협의 기운도 실려 있지 않았다. 그 대신 그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향기가 담겨 있었다. 살며시, 아주 살며시 다가와 그의 입술에 내려앉는 부드러운 입맞춤. 그는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처음으로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춘 것이었다.
그는 조용히 속삭였다.
-파티마, 기다려요. 이제 그대에게 달려가겠소.
-느낀 점-
긴 여운이 남는 책을 참 오랜만에 읽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오랜 모험 끝에 보물을 그 어디도 아닌, 자신이 장초에 머물던 곳에서 발견하는 부분이 압권이었습니다. 행복은 가까운 곳에 있다라...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이 책에는 수많은 추상적인 상징과 비현실적인 묘사가 자주 등장합니다. 이러한 마술적 리얼리즘이 이 책의 호불호를 가르는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다지 개연성 없는 비현실적인 묘사를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그래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중간에 산티아고와 연금술사가 군대에 잡히고, 산티아고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바람으로 변하여 순간이동하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그 과정에서 산티아고는 바람과 해와 우주의 언어로 철학에 관련한 긴 대화를 나눕니다. 이 대화가 너무 현실성 없이 모호해서 잘 읽히지는 않더라구요... (제대로 이해되지 않아 줄거리에서도 생략했습니다.) 그 부분은 좀 아쉬웠다고 생각합니다.
혹자는 이 소설이 사이비 같이 작가의 신념을 들이미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고 말합니다. 우주의 정기와 언어 같은 추상적인 개념이 반복해서 작중 내내 나타나고, 실제 작가도 연금술을 연구했던 이력이 있는만큼 책을 읽으며 그러한 인상이 완전히 없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믿고 싶어 마다 않는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진리, 그 진리에 대한 자신감을 북돋아주기엔 여전히 충분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꿈을 이루는 기적은 다름아닌 제 자신으로부터 시작되고 그 과정에서 얻는 것은 인생의 자양분이 됩니다.
저 또한 품고 있는 꿈을 향해 정진해야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행복의 연금술"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