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완독한 책은 '인간실격'.
독서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자주 추천되는 책이길래 읽어 보았다.
사실 이 책은 연수 중에 읽은 책으로, 완독한지 벌써 3주가 흘렀다.
(귀차니즘이 문제다.)
굉장히 인상 깊게 읽은 책이지만 시간이 꽤나 흐른지라, 그 인상을 온전히 독서일기에 담을 수 없게 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아무래도 이를 구실로 나중에 여러번 읽어 보라는 뜻인가 보다.
인간실격은, '세상'을 이해하지 못 하는 '오바 요조'가 살아 나가며 사회적 고립, 자기파괴적 행위를 겪고 끝내 사회적으로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폐인으로 전락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래서 소설의 제목도 '인간실격'.
오바 요조는 부유한 집안의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집안의 부는 그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 했다.
요조는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 했고, 사람들과 엮이는 것은 그에게 있어 일종의 관문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의 눈치는 있었는지.
그는 그런 관문을 맞닥뜨릴 때마다 한 명의 '광대'가 되어 상황을 여유롭게 그리고 재치있게 넘어갔다.
요조는 그렇게 사회에 녹아 들기 위하여,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연기하는 변장의 대가가 되었지만
언제까지나 그것은 연기일 뿐, 진정한 '오바 요조'는 다른 사람들이 아무도 모르는 가면 뒤에 숨어 있었다.
요조의 아버지는 매정하고 엄격한 사람이었고 요조에게 애정을 보이는 일이 적었다.
그런 요조는 자신의 안식처를 그림에서 찾았다.
요조는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자신이 보는 세상을 거침 없이 날 것 그대로 휘갈기는 일명 '도깨비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그런 그림은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 혐오와 불쾌감을 불러 일으킬 것이 뻔하기에,
그는 자신이 진정으로 그리고 싶어하는 도깨비 그림을 철저하게 숨겼다.
요조가 지금까지 능숙하게 익살을 통해 관문을 넘어갔던 것처럼,
요조는 다른 사람에게 그림을 보여줄 일이 있으면, 유명 화가들의 풍경화 기법을 따라한 듯한 그림을 대충 보여주곤 했다.
그의 삶에서 그러했듯, 그는 그림에서도 다른 사람을 연기해야만 했다.
요조는 이후 그림을 배우기 위하여 도쿄로 상경했다.
그곳에서 그는 악우 '호리키'를 만난다. 호리키는 그에게 매춘의 세계를 알려줬고, 이내 요조는 매춘에 빠지고 만다.
자신 주변의 다른 사람들과 달리, 매춘부는 자신에게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아 마음이 편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렇게 술과 매춘에 빠져 살던 요조는 술집 여종업원 '쓰네코'를 만나 그녀와의 교제를 시작했다.
요조는 그녀에게서 자신과 같은 고독과 슬픔의 냄새가 풍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쓰네코는 요조에게 동반자살을 권유했고, 그 또한 세상에 미련이 남아있지 않고 염증을 느끼던 차라 쓰네코와 함께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요조는 살아 남았다.
요조는 이후, 혼자 살아 남았다는 죄책감과 함께 비참함에 빠진다.
자살 사건으로 요조는 집에서 내놓은 자식이 되었고, 학교에서도 퇴학을 당해 사회적으로 한층 더 격리된 상태가 되었다.
그러던 차에 그는 딸 있는 과부였던 시즈코라는 여자를 만나 그녀와의 동거를 시작한다.
요조는 자신과 시즈코, 그리고 그녀의 딸인 시게코 사이에서 안락함을 느끼는 듯했으나, 그는 동시에 두려움과 공포를 느꼈다.
이러한 요조의 감정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 바로 시게코가 자신을 '아빠'라고 부르는 장면이다.
시게코가 자신을 아버지라는 역할을 가진 인물로 인식하자, 그는 질겁하며 무한한 공포를 느꼈다.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에서 비롯되는 두려움이었다.
이후 그는 술에 취해 집에 돌아 오다가 시즈코와 시게코가 행복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자신이 없으면 저 둘이 더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에 다시는 그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렇게 자신과 비슷한 냄새를 풍겨 동질감을 느꼈던 쓰네코는 죽고, 자신만이 비참하게 살아남았고
마음의 안식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시즈코와의 관계에서, 그는 결국 유대감을 형성하지 못한 채 도망쳐 나왔다.
술에 빠져 살던 중, 요조는 세 번째 여자인 요시코를 만난다.
요조는 순수한 요시코의 모습에서 강한 신뢰감을 얻었고, 그의 삶 또한 그렇게 자리를 잡아가는듯 보였다.
그러나 그의 이런 기대는 산산조각 나게 된다.
자신의 집에 들르는 상인에게 요시코가 강간당하는 모습을 목격한 것이다.
그는 매우 큰 충격을 받는다.
요시코가 강간 당했다는 사실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순수한 신뢰를 짓밟고 이용하는 사람을 발견했다는 사실과 그 광경을 보고도 손 쓰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는 자기 자신의 모습 때문이었다.
큰 충격을 받은 요조는 다시 폭음을 시작했고, 결국에는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하며 자살을 기도했지만 이 또한 실패로 끝이 났다.
그의 건강 또한 악화일로를 겪기 시작했고 각혈을 하는 상황까지 치닫는다.
이후에는 술을 끊기 힘들 때 주사하라고 받았던 모르핀에 심하게 중독되었고,
그 모르핀을 얻기 위해서 약국 부인과도 불건전한 관계를 맺는다.
그렇게 폐인으로 살아가던 중, 악우 '호리키'가 그를 찾아왔다.
호리키는 요조가 지금껏 본 적 없는 매우 부드러운 미소를 띄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그가 자신을 데려간 곳은 다름아닌 정신병원이었다.
요조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미치광이라고 보는 것을 깨닫고, 자신은 이미 인간이 아닌, "인간실격"인 존재가 되었음을 깨닫는다.
이후 정신병원에서 나와 고향으로 돌아간 요조는 모든 것은 스쳐 지나가리라는 깨달음을 얻었고,
거울을 바라보며 자신의 나이는 겨우 스물 일곱이지만 머리가 하얗게 새어버려 사십 이상으로 보인다고 말하며 소설은 끝을 맺는다.
인간실격을 읽고 꽤나 여운이 남았다.
세상을 이해하지 못 하는 한 사람의 정신과 심리가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보는 것이 흥미로웠다고나 할까.
또 그 도착지가 결국 인간실격인 존재가 되는 것이어서 더 깊은 인상을 주었다.
어떻게 보면 줄거리는,
'정신 세계가 완전히 별난 오바 요조라는 인물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며 퇴폐적인 삶을 쫓다가 정신병원에 입원되는 이야기'로 요약될 수 있겠다.
공감되지 않는 인물의 일대기를 이토록 흥미롭게 만든 것에는,
소설에 제 3자가 오바 요조의 수기를 엮어서 출간한다는 액자식 구성의 장치가 설치되어 있어, 자연스럽게 독자가 소설 속 인물의 일을 관찰한다고 느끼게끔 만든 것과
작가인 다자이 오사무의 치밀하고 세심한 심리 묘사에 있다고 생각한다.
소설 속의 인상적인 장면으로는 오바 요조가 호리키와 함께 죄의 반댓말에 대해 토론을 펼치는 장면이 있었다.
오바 요조는 토론 끝에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서 착안해, 죄의 반댓말은 벌이라고 결론을 짓는다.
왜 요조는 죄의 반댓말을 벌로 보았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요조는 자신이 세상을 이해하지 못 하고 벌여 온 행동들, 퇴폐의 세계에 빠져 살던 세월들에 대해 마음 속 한 켠에서 일말의 죄책감을 갖고 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죄의식을 벌을 받음으로서 씻어내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토론하는 장면 바로 다음에 요시코가 강간당하는 사건이 벌어지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요조가 생각하기에, 요시코가 신뢰를 이용한 사람에 의해 강간 당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 것은 하나의 벌이 아니었을까?
만일 그렇다면 벌을 받음으로 죄책감을 덜어낸다는 그의 생각은 완전히 틀린 것이 되며, 되려 그는 더더욱 바닥으로 침전한다.
이를 통해서 벌을 통해서 안정적인 삶을 되찾는다는 요조의 희망은 헛된 것임을 확인시키고,
사회에서 격리되고 배재되어 가는 요조의 자멸하는 모습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이후에 읽은 동일 작가의 책 '사양'과 함께 지금까지 읽은 책 중에서도 인상 깊은 책으로 남아있다.
(지금까지 몇 권밖에 읽지 않았다는 것이 함정)
마음에 드는 것은 가져야 한다는 소유욕이 여기서 발동됐는지,
결국에는 교보문고에 가서 '인간실격'과 '사양'을 구매하기까지 이르렀고, 지금은 내 컴퓨터 옆 책장에 나란히 꽂혀있다.
나중에 책을 많이 읽어서, 책 보는 눈이 좀 생긴 뒤에 다시 한번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하고, 그때는 처음 읽었을 때 미처 발견하지 못 했던 어떤 것을 발견하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