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말의 일이다. 비가 매일매일 쏟아졌다.
2020년의 폭우 사태의 재발생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마구 쏟아졌다.
아마 기억상으로는 전남 해남 부근에서 또 한 번 물난리가 났던 것 같다.
하필이면 또 올해가 기록적인 지각장마 신기록이라며 장마가 늦게까지 연장될 거라고 한다.
이미 작년에도 전국일주의 똑같은 멤버끼리 소요산을 등산하려다가 비가 온다는 예보에
눈물을 머금으며 숙소 예약을 취소하고 약속을 깬 가슴 아픈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근데 그날 막상 맑았다. --; 빵꾸하고 헬스장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무심한 날씨에 욕을 했던 기억이 ㅋㅋ)
작년의 그 일이 똑같이 반복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근데 이거는 그냥 약속도 아니라, 무려 한 달 간의 전국일주이다.
이 이상으로 미루면 곤란하다.
만약 폭우가 극심해서 전국일주를 이번 여름에 가지 못한다면,
그 뒤에 전국일주를 갈 수 있을지.
간다고 해도 뜨거운 청춘으로 무식하게 부딪히는 그런 느낌이 그때도 똑같이 느껴질지.
장담할 수 없었다.
내 마음 속은, 아니 창쿤과 빵꾸의 마음 속도 똑같았을 것이다.
무조건 가야 한다.
비가 오든 말든 일단 갈 생각으로 밀어 붙이는 우리들의 주변에서 역시 근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비 오는데 어떻게 가려고 하나.
미루고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니 다시 생각해 보아라.
역시 자전거 한 달 동안 그렇게 가는 건 무리다.
특히 우리 부모님께서 많이 걱정하셨는데,
나는 성을 내며 고집스럽게 날씨는 괜찮을 거라고, 무조건 괜찮을 거라고.
그렇게 근거없이 장담하며, 매일매일 제발 전국일주 때에 날씨만 맑게 해달라고 엄청나게 빌은 기억이 난다.
전국일주 가기 5일 정도를 남겨놨던 날이었을까. 창쿤이 보자고 했다.
"비누야, 시간 좀 나냐?"
창쿤의 아버지께서 비가 올 거 같다고 진지하게 여행 일정을 연기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씀하셨댄다.
그래서 앞으로의 일기예보를 펼쳐 놓고 여행 일정에 대해 진지하게 상의해보자고.
나도 나름대로 전국일주에 비장한 각오를 다지고 있었기 때문에, 거사를 치르기 이전에 제사를 치르듯,
전국일주 출발 전에 만나서 술을 가볍게 마시며 무사 여행을 기원하는 만남을 가지려던 차였다.
그렇게 성사된 사전 만남.


위는 무한리필 갈비집에서의 1차이고, 아래는 우리 동네에서 나름 비밀의 아지트로 통하는 허름한 동동주 집이다.
창쿤과 빵꾸와 함께 오랜 토의를 거쳤다.
확실히 이번 주에는 줄창 비가 내렸다. 그것도 우수수.
그러나 네이버나 구글 예보에 따르면 80%에 머무는 강수확률이 다음 주에는 50% 대까지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보통 중요한 여행이라면 50%의 강수확률 또한 큰 확률이고, 설사 비가 오지 않는다 한들 흐리고 우중충한 날씨일 것이 뻔하기 때문에 미루고는 한다.
그러나 이건 다름아닌 전국일주였다.
단 10%의 확률도 우리에게는 간절했으며, 우중충한 하늘이고 뭐고 자전거 페달을 밟을 수 있을 정도까지만이라도 비가 온다면 감지덕지였다.
더이상 여행을 미뤄서 가고 싶지 않다는 것에 동의한 우리 모두는 50% 강수확률을 믿고,
다음주의 운에 맡겨 우리의 여정을 시작하기로 했다.
아래의 사진을 보다가 당시 생각난 에피소드인데,
동동주 집에 당당하게 들어가서 동동주를 시켰는데, 주인 할머니께서 동동주가 다 떨어졌다고 하셨다.
솔직히 저곳만큼 조용하고 편하고 누추하게? 술 마실 그런 장소가 생각이 나지 않아서, 차선책으로 막걸리를 시켰다.
아뿔사, 막걸리도 떨어졌다고 한다.
곤란한 표정을 짓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고는 할머니께서 꺼내신 한 마디
"내가 금방 사올게. 여기 기다리고 있어~."
예 아니오조차 말할 틈도 없이 할머니께서 마트로 직행하시고, 얼떨떨한 우리들만이 가게 안에 홀로 남아있던 기억이 난다.
중간에 손님이라도 들어오면 우리가 받아줘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ㅋㅋㅋ
어쨌든 우리는 다음주에 있을 전국일주의 꿈을 속에 그리며, 무사 여행을 위해 건배사를 하고 건배를 하였다.
부디 무사하고 뜻깊고 기억에 남을 찌~인한 여행이 되기를.
전국일주 시작 3일을 남겨둔 나의 일기 (전국일주 기간에도 매일 일기를 작성하였다.)
D-3 / 2021년 7월 8일 목요일 23시 27분
자전거로 전국을 일주한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던 것이 언제였던가. 일 년 반 넘게 손꼽아 기다리던 그 꿈 같은 날은 이제 불과 3일을 남겨두고 있다. 30분도 채 안 되어 D-Day는 단 이틀만을 남겨두게 된다. 흡사 전역날과 같다. 오지 않을 것만 같던 날이 이렇게 평상시와 다름없이 흘러흘러 다가오다니... 오늘 매우 걱정되는 것 하나는 코로나 19 확진자가 연속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번주에는 39년만의 지각장마니 뭐니로 한창 난리였다. 왜 하필 올해가 39년만의 지각장마야... 하고 매일같이 나를 기상청에 매일 들어가 날씨 예보를 확인하게 하며 귀찮게 하더니 이젠 생각치도 않던 코로나가 말썽이다. (다행히도 장마기간이 시작됐음에도 여행 출발 첫 주, 7일 간은 비가 오지 않는 마른 장마로 보여 한 숨 덜었다.) 뭐, 여차저차 우리의 여행을 방해하려 하는 요소가 많은데, 나의 전국일주 계획은 완고하고 굳건하다. 결코 이런 것들에 흔들리고 좌지우지 되지 않고 지장 받지 않을 것이다. 자, ㅇㅇㅇ. 인생에 길이길이 남을 뜨겁고 찐한 청춘의 족적을 남겨 보자고!!
7월 11일 오전 5시.
알람이 울리기도 채 전에 일찍 잠에서 깼다.
매우 상쾌하면서도 마음 속의 고동을 억누를 수 없었다.
그도 그럴게, 오늘이 바로 전국일주를 시작하는 그 날이었다.
일찍이 세수를 하고 짐을 확인했다.
동네 근처에 사는 빵꾸도 잠을 다 설칠 정도로 기대되었다고 한다.
오전 7시에 빵꾸와 내 집 앞에서 만나, 근처의 지하철을 타고 평택까지 내려갔다.
창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평택에 내려가서 살았는데,
서울에서 평택까지 도심 속을 건조하게 나하고 빵꾸 둘이서만 가기 보다는
애초에 도심에서 살짝 벗어난 평택까지 우리 둘이 내려가서 거기에서 창쿤과 만나
셋이서 다 함께 전국일주를 시작하자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었다.

평택역 도착 후 한 장.
왼쪽이 빵꾸의 자전거. 오른쪽의 나의 자전거이다.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의 우리의 상당한 짐과 차림새를 보고 지나간다.
저희 뜨겁게 자전거 전국일주 다녀오겠습니다! 말하고 싶을 정도로 우리 둘은 신이 나있었다.


창쿤과 어렵사리 평택역에서 합류했다.
(카투사로 험프리스 기지에서 근무하여 나름 평택역이 많이 익숙했지만, 평택역 뒤쪽에 사람들이 잘 쓰지 않는 또 다른 엘레베이터가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야 드디어 우리가 떠나다니."
"믿기지가 않는다."
우리들의 입 밖으로는 이런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 부푼 기분을 표현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페달을 밟기 직전의 사진.
다녀오겠습니다. 라고 이름을 붙이고 싶다.

평택호 자전거길을 따라서 아산만으로 나갔다.
사진 상으로는 밝아 보이지만, 역시 우중충했다.
언제 비가 와도 이상하지 않을 흐림이었으나, 그래도 비가 우수수 떨어지지 않음에 감사하고 그저 기뻤다.
사진을 따로 찍을 수는 없었으나,
평택호 자전거길이 내가 매우매우 좋은 추억을 갖고 그리워하는 군생활을 보낸 캠프 험프리스의 둘레를 따라 돌아가는 코스였다.
바로 담장 너머로 내가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많은 추억을 쌓고 색다른 경험을 했던 그 장소가 눈에 비치니
기분이 묘하기도 했고, 그땐 그랬지 하는 향수가 느껴졌다.
왠지 좋은 일이 있을 거 같은 그런 기분이 났다.


평택호 자전거길의 가장 큰 문제점은 평택까지만 자전거길이 있다가 바로 끊겨 버린다는 것.
덕분에 충남 아산에 진입하자마자 자전거길이 없어짐과 동시에 시골의 느낌이 연신 묻어났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농로를 더 좋아해서 딱히 자전거길이 끊어졌다고 아쉽지는 않았다.


잊을 수가 없는 구간 중 하나이다.
걸매리라는 마을을 앞두고 있었다.
이름부터 이미 특이하다. ㅋㅋ
걸매리 진입을 앞두고 왠지 구름이 심상치 않다.
심상치 않은 바람이 느껴졌지만, 전국일주 첫날의 운을 믿고 나는 연신 괜찮겠지~라며 걱정을 무시했다.
그러나 아뿔사.
"야, 이거 뭐냐? 비 오는데?"
"와 갑자기 엄청 쏟아진다! 야 야! 저기 마을 회관 정자에 일단 피신!"
갑자기 쏟아지는 비에, 우리 셋은 걸매리 마을 회관 앞 정자에 자전거를 대고 비를 피했다.
비가 주르륵 쏟아지는데도 그게 뭐리 재미있다고, 우리들은 행복한 기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
정자 안에서 우리들은 서로를 찍으며 무심히 비오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빗소리가 경쾌했다.

카메라 삼파전

동반촬영

비가 조금 수그러들자, 준비해 두었던 우비와 방수 비닐을 가방에 씌워 여행을 계속했다.
그러나 머지않아 비가 다 그쳐서 우비와 비닐을 모두 걷었다.
비가 와도 기분 좋게 소나기 같이 지나가서 참 천운이 따른 것 같다.


"야~ 바다다~"
핸드폰 네비게이션이 있어서 곧 바다가 나온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역시 여행에서 처음으로 바다에 도착한 기쁨은 억누를 수 없었을까.
우리는 삽교천 방조제를 배경으로 웃긴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다.
방조제에 관해서는 별로 좋지 않은? 기억이 있다.
저번에 연습 겸으로 수원에서 평택까지 120km 라이딩 연습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나름대로 좋은 경치를 보면서 가겠다고 코스에 궁평항 방조제를 껴넣었다.
아주 지루해 미치는 줄 알았다. ㅋㅋㅋ
해풍은 계속 밀어대지. 옆에서는 차가 쌩쌩 달리지. 풍경은 계속 똑같이 변하지도 않지.
텐션을 깎아먹기 참 좋은 코스였다.
그치만, 이번 삽교천 방조제는 궁평항 방조제보다 훨씬 짧기도 하고
역시 전국일주의 버프가 있어서 별로 힘들지도 않게 방조제를 건널 수 있었다.

금강산도 식후경.
삽교천 함상공원 유원지에 도착하여 배꼽시계가 울렸다.
근데 나는 별로 해산물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어서.
(저 분위기의 점심으로 조개구이, 해물찜, 회를 먹기도 좀 그렇고.)
해산물을 팔지 않는, 그리고 점심으로 먹기 적합한 것을 찾아 한참을 다녔다.
결국 발견한 것이 이 수제 바게뜨 버거 집.

바게뜨 버거? 처음 듣는 음식이다만.
무엇이든 해산물 요리보다는 괜찮았다.
가장 메인메뉴로 보이는 것 3개와 수제 청 음료 3캔을 시켜 자리에 앉았다.

엄청 맛있었다. ㅋㅋ
다만 음료수가 후하게도 너무 찐해서 오히려 나중에 갈증이 오지나 않을지 걱정될 정도였다.
개인적으로 먹는 것 또한 여행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하기에,
아마 여행을 다니며 음식 사진은 정말 열정적으로 찍은 것 같다.
삽교호의 바게뜨 버거도 첫 끼라서 그런가, 전체 전국일주를 돌아보며 기억에 남는 음식 중 하나로 손 꼽힌다.



다시 체력 보충을 하고 떠났지만, 우리들은 여행 중 처음으로 난코스에 돌입했다.
일명, 노잼코스.
이러한 이름이 붙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삽교천을 따라 방조제부터 홍성까지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삽교천 천변을 따라 가는 코스였는데,
말 그대로 주변에 아~무 것도 없었다.
심지어 비가 온 직후라서 습기는 엄청나고 푹푹 찌고 물은 다 떨어지고 미지근하고...
주변에 아무 것도 없이 그냥 콘크리트 농로를 따라 30km 넘는 거리를 밟는데 따분해 죽는 줄 알았다.
"어어? 나 핸드폰 꺼진다."
중간에 또 창쿤의 핸드폰이 꺼졌다.
뜨거운 여름 날에 핸드폰 네비를 계속 켜놓은 탓에 먹통이 된 것이다.
셋 다 네비가 없으면 길을 잃고 다른 길로 샐 수도 있었기 때문에,
우리 셋은 급하게 라이딩 체계를 바꿔서 제일 앞에 있는 선두와 중간의 사람이 핸드폰 네비를 켜고
맨 뒤의 사람은 혹여 뒤에 오는 차를 앞의 사람들에게 벨을 이용해 알려주는 체계를 구축했다.
또 선두를 계속 하던 사람이 하면 배터리가 다 닳으니까 20km 마다 선두를 교체하기로 했다.
(근데 후반으로 갈수록 이 녀석들 체력이 후달려서 맨날 내가 선두했다 --)

노잼구간 중간의 다리 밑에서 한 컷.
중간에 자전거를 타고 온 한 아저씨도 있었는데, 우리들하고 서로 무언가를 말하고 싶기는 한데 눈치가 보였는지 서로 어색한 눈빛 교환만 하다가 헤어졌다.



노잼구간의 중간 연식이 꽤 되어 보이는 나무와 그 밑의 벤치를 발견했다.
딱히 마을 회관이 있던 것도 아니고 그냥 주변에 집 한 채만 있던 것일 뿐인데, 벤치가 있음에 감사하고 행복할 뿐이었다.
망설임도 없이 우리들은 자전거를 냅다 버려두고 벤치에 누웠다.
(그리고 나와 빵꾸를 도촬하는 창쿤)
정말이지 거기서 자라고 하면 바로 잠에 들 자신이 있었다.
이곳에서 10분 20분은 그대로 서로 아무 말도 없이 누워있던 것 같다.
셋 중 누군가는 그 사이에 잠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점점 날이 어두워지자 우리들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왠지 모르게 빠르게 모텔을 구해서 숙소를 구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우리 셋은 모두 자랑스럽게도 모텔을 이용한 경험이 적기... 때문에

벌써 이 시간이면 자리가 전부 동난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함이 마음 어딘가에 자리잡고 있었다.
서둘러 지도를 열어 주변의 모텔을 찾아보았다.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바로 앞의 삽교읍의 낡은 여관을 들어갈까.
약 15km 떨어진 홍성 북부의 한 무인텔에 들어갈까.
우리는 후자를 선택했다.
이미 한 여름 땡볕 아래에서 자전거를 타기로 결심한 우리들의 눈에는
시설이 구질구질 하다던가 열악하다던가 하는 것은 이미 이해할 수 있고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부분이었다.
단지 우리들의 다리는 아직 생각보다 멀쩡했으며,
이대로 바로 앞 삽교읍을 가서 자전거 여행 첫 날을 끝마치기에는 아쉽다는 생각이었다.
근데 지금 생각하는 것인데, 내가 다시 저 상황에 놓인다면 나는 전자를 선택할 것이다.
다 끝나서 하는 말이지만, 우리의 전국일주 여행에는 약간 뭐라고 해야 할까, 여유가 부족했던 것 같다.
차라리 하루에 조금씩 조금씩 거리를 이동해 주변 읍내를 둘러보고 여행해도 좋았을 텐데.
하루 평균 70km 정도는 가야 한다고 하는 생각에 왠지 모르게 사로잡혀 그 거리는 꼭 가려고 했던 거 같다.
그 덕에 주변의 읍내를 그냥 지나치고 시간 없다고 패스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취업을 하고 나서 나는 짬에 못다한 여행을 가면서 다시 이 녀석들과 함께 (아마도?) 몇 번 더 자전거 여행을 할 계획이 있는데,
그때는 이미 이전에 배운 교훈도 있겠다 반드시 일부러 적은 거리를 하루에 가는 것으로 설정해서
보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볼거리가 있으면 바로 페달을 멈춰 세우고 구경하는 그런 마음가짐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리저리 다니면서 구경을 하려고 자전거를 탄 거지, 구간 주파 기록을 세우려고 자전거를 타는 것이 아니니깐.

결국 우리는 홍성 북부의 무인텔에 도착하였다.
이름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잊을 수가 없다. ㅋㅋ
밥 먹고 돌아오는 길에 반짝반짝 빛나는 무인텔의 전광판이라던가.
눈에 잘 띄는 간판에 비해 생각보다 구불구불하고 밤에 걸으면 무서운 진입로라던가.
무인텔의 독보적인 장점은 바로 이 차고인 것 같다.
개인 차고가 있어 자전거를 마음 편하게 둘 수 있고 짐을 빼거나 짐을 다시 실을 때 빤쓰 바람으로 그냥 다닐 수 있어서 좋다.
CCTV가 있는 것을 나중에야 발견했는데, 뭔 상관이겠는가~ ㅋㅋ
어차피 사각팬티나 반바지나 종이 한 장 차이인 것을.


창쿤이랑 현장 한식뷔페 집을 갈지, 곰탕 집을 갈지 대립이 있었다.
우리들의 해결방식은 힘의 질서... 가 아니라 언제나 민주적인 가위바위보.
내가 졌다.
근데 딱히 아쉽거나 하지는 않다.
전국일주 첫 날의 저녁인데 무엇인들 맛이 없으랴.
모텔에서 곰탕 집으로 가는 길의 경치가 가관이어서 사진을 찍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 창쿤을 도촬하는 나.

조용하지만 넓은 규모의 곰탕 집이었다.
미니 솥의 밥과 김치를 말아 먹으며 한 그릇을 뚝딱했다.
그러면서 얘들하고 여전히 내가 전국일주를 하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등 그런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앞으로의 설레는 여행은 이제 앞으로 우리들이 그려 나가는 것이다.'
이런 부푼 마음에 가득 차 있었다.

이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이 여행을 통해 창쿤이 이렇게나 주전부리를 좋아하는구나 하고 진정으로 깨달았다.
창쿤이 모텔로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르자고 하고 주전부리를 샀다.
이에 나도 합세해서 나름 맥주 캔을 한 캔씩 사서 우리의 경사로운 첫 날의 축배를 들자고 제안했다.
(근데 배불러서 힘겹게 다 비웠다...)
모텔에 도착해서 과자를 넓게 펼치고, 네비게이션 앱을 틀어 다음날의 경로와 계획에 대해 토의했다.
매일밤 우리는 다음 날의 계획을 세우기 위해 토의 하는 시간을 가졌다.
혹여 나중에 또 언급될 수도 있으니 이 시간을 '토의타임'이라고 칭하겠다.
다음 날은 홍성을 거쳐 서해 앞바다로 다시 나가, 안면도에 들어가자는 것에 모두들 동의했다.
토의가 끝나고, 나는 과도하게 긴 건배사를 시작했다.
"앞으로 우리들의 무사한 여행과......어쩌구 저쩌구......제일 중요한 것은 건강이고......항상 웃으면서 다니고......"
"아 팔 아퍼 빨리 해."
빵꾸가 내 건배사를 끊었다. 건방진 녀석 ㅋㅋ
에라 모르겠다. 나는 건배사를 그냥 끊고 녀석들과 건배를 하고 맥주를 들이켰다.
비록 건배사는 끊겼지만, 건배할 때 우리들 모두의 마음 속에 있던 것은 동일했을 것이다.
앞으로 펼쳐질 여행이 기억에 남을 최고의 여행이 되게 해달라는.
이렇게 우리들이 1년 반 넘게 기대해 온 자전거 전국일주 여행은 막을 올렸다.
무슨 일이 펼쳐질까. 하나도 모른 채 부푼 마음을 안고 페달을 밟기 시작한 그 날.
그렇기 때문에, 전국일주가 다 끝나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날이다.
이때의 기분을 생각하노라면, 지금도 설레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보너스 샷

창쿤의 우아한 거품목욕 씬을 촬영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