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를 전역하고부터인가 시간은 소중하고 한정되어 있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 한 켠에 계속 멤돌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때부터 나는 비는 시간을 아무 것도 안 하며 보내는 게 뭔가 껄끄러워서, 그러기가 어렵다.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이 제일 어렵다니 뭔가 역설적인 느낌이 든다.
그 비는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람직한 활동은 자격증 준비, 시험 공부와 같은 비단 학업이나 취업에 관련한 것만이 아닌
행복하게 돌아볼 수 있는 기억을 쌓는 것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개념이다.
전역한지 반 년이 지나, 나는 그렇게 그리던 대학교로 돌아갔다.
그러나 다시 시작된 나의 대학 생활은, 내가 입대하기 전, 그러니까 약 3년 전에 내가 받았던 대학 생활의 느낌과는 완전히 상반됐다.
학기는 집 안에만 틀어박혀 온라인 강의나 반복하며 과제와 프로젝트, 시험을 준비하는 것의 연속으로 가득 차 있었다.
코로나의 탓인지, 급증한 과목의 양과 난이도 탓인지, 아니면 취업에 대한 내 마음 속 한 구석의 근심 때문이었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앞으로 더 바빠지면 바빠졌지 여유로워질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생각한 것과 완전히 달랐던 대학 생활에 거의 충격을 받다시피 한 나는 앞서 말한 시간 사용에 대한 일종의 압박감의 영향을 받아, '지금밖에 할 수 없는 것'을 늦기 전에, 기회가 있을 때 해서 좋은 추억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지금밖에 할 수 없는 것'.
그것은
자전거 전국일주
였다.
사실 자전거 전국일주의 꿈의 역사는 짧지 않다.
초등학생 때부터 지도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지도를 외우고 따라 그리는 일명 지도광이었다.
(초등학교 한국 지리 시간에 선생님이고 친구고 모두 나에게 질문을 물었으니 말 다했다.)
심지어는 꼬마 김정호를 자칭하며, 직접 동네를 돌아 다니며 우리 동네의 지도를 만들기까지 했다.
당시 탐사를 위해 애용했던 나의 이동수단은 자전거였는데, 아마 그때부터 나와 자전거의 연이 시작된 것이지 싶다.
중학생이 되어 졸업하기 전까지 나는 자전거를 일상적으로 타고 다녔다.
한창 어른이 된다는 것 대한 동경심이 가득할 무렵, 나는 당시 나의 단짝친구와 약속을 맺었다.
'어른이 되면 전국일주를 가기로.'
아쉽게도 '그 친구와 끝내 약속을 지켰다.' 같은 드라마틱한 스토리는 아니다.
그 친구와는 고등학교도 다르고 사는 곳도 완전히 달라져 점차 소원해져 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나의 자전거 전국일주 꿈의 역사는 깊다는 것이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고등학교가 조금 멀기도 했고 바쁘기도 했고, 초등학생 때부터 타고 다니던 자전거가 고장나 자전거가 없어지기도 했고 자전거를 타는 것을 그만 두었다.
그렇게 나의 삶에서 자전거는 점점 잊혀갔고, 나의 꿈도 잊혀갔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나의 소중한 자전거, '람보르저스틴'이다. ㅋㅋㅋ
자전거를 좋아하고 관심있는 사람들은 싸구려 생활 자전거라고 생각할 테다. 뭐 나도 솔직히 그렇게 생각한다. (전국일주를 하면서 업힐 구간에서 그 사실을 아주 뼈저리게 통감했다. 허벅지로...)
그래도 지금 내게 이 자전거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 어려 있는 소중한 녀석이다.
내가 이 자전거와 처음 만나게 된 것은 2019년, 한창 카투사로서 캠프 험프리스 안에서 군생활을 보내고 있을 무렵.
우리 카투사에서는 기지가 커서 기지 안에 버스가 다닐 수준이기도 했고, 전반적인 군생활 자유도도 높았기 때문에 기지 안에서 자전거나 전동 킥보드와 같은 이동수단을 자유롭게 타고 다닐 수 있었다.
나는 자전거에서 손을 뗀지 6년 넘게 지나기도 해서, 기지 안에서 타고 다니려고 자전거를 사서 기지 안에 갖고 들어오려는 생각은 딱히 없었다.
근데 핫딜 앞에는 장사 없다고,
곧 전역을 하는 친한 선임이 자전거 처리 문제로 끙끙대다가 헐값에 내게 제안한 것이 그만 나의 사고 스위치를 꺼버렸다. (강매 당한 거 아닙니다 ^^)
2018년에 40만원에 사고서 군대에서 10번도 안 타고 다닌 것을 1년 지난 2019년에 8만원에 파는 것은 나름 핫딜이 아닌가!!
참고로, '람보르저스틴'이라는 굉장한 이름을 얻게 된 계기는 생각보다 매우 싱겁다.
후임한테 자전거 핫딜 자랑한다고 불러서 보여주면서, 자전거의 림 부분에 큼지막하게 'JUSTIN'이라 써있길래, 순발력을 최대한 활용해서 급조한 이름이다.
군생활 때 나는 헬스에 빠져 있었고 부대 내 헬스장은 어림잡아 숙소로부터 3km 정도는 떨어져 있었으니까, 나는 거의 매일같이 저 자전거를 탔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던 어린 시절이 점점 떠올랐다.
그러더니 그만 깊은 정이 들어 버려 전역을 하면서 평택에서 서울까지 덜컥 가져와 버렸다.
이것이 전역 전까지의 얘기고, 전역 후의 부분은 앞에서 말한 바쁘니 뭐니 충격받았니 말했던 바와 같다.
전국일주 코스는 다음과 같고 총 2165km에 달했다.
허나 나중에 써가면서 말하겠지만 상당 부분이 실제로 지켜지지 않았다. ㅋㅋㅋ
여행 시작일은 2021년 7월 11일 일요일.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한 달 정도를 예상 기간으로 잡았다.
원래는 한 번 가는 거 찐하게 가보자고 매일 텐트까지 쳐서 노숙을 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창쿤이 가기 보름 전에 느즈막히 말하는 것이다.
"야, 근데 우리 텐트 말인데 좀 아닌 거 같지 않아?"
대충 그래도 찐하게 갔다 오려면 텐트가 있어야 한다. 그것만이 할 수 있는 추억이 있다.
이런 말로 대충 창쿤에게 설교하고 돌려 보냈다만, 나 자신조차 집에 돌아와서 다시 생각해 보니 좀 아닌 거 같은 것이다. ㅋㅋㅋ
괜히 하루 이틀이야 추억이지만 매일매일 찌는 여름 밤에 샤워도 못하는 일이 태반일 텐데 노상에서 그냥 자는 게 얼마나 고될지 생각을 하자, 바로 텐트 야영의 생각은 집어 넣고, 모텔 투숙으로 노선을 바꿨다.
(정말 잘했다.)
나를 포함해, 후술할 친구 두 명은 자전거로 장거리를 가본 적이 없고, 장거리를 간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한 녀석은 자신의 인생에서 자전거를 타본 시간이 1시간조차 안 되는 생초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전국일주를 떠나면 실패할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에, 2020년 여름부터 차곡차곡 연습을 쌓아갔다.
연습이란 이름으로 그 일 년간, 월미도와 행주산성부터 시작해 임진각, 김포 대명항, 대성리, 오이도, 수원, 평택, 춘천 등 여러 곳을 쏘다녔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그때의 기억들도 하나하나 전부, 생각하기만 해도 절로 미소가 띄워지는 소중한 추억이 된 것 같다.
앞으로 블로그 일지에 같이 출연할 본인과 친구 둘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본인 (코드네임 - 비누) (24세 대학생)
특이사항:
체력이 많음
정말 성실하고 착하고 배려심 많고 너그럽고 자비롭고 자애로움 (팩트)
창쿤 (24세 대학생)
특이사항:
잘 삐짐
오덕임
(근데 나도 그렇다. 응?)
빵꾸 (24세 대학생)
특이사항:
본인과 초등학생 때부터 친구
햇빛과 상성이 매우 안 좋음
체력이 저질임
특히 이 친구는 전국일주 중에 빵꾸라고 불리게 된 이유가 있으니,
궁금하다면 일지를 계속 읽어 보시라.
나와 창쿤, 그리고 빵꾸는 질풍노도?의 고등학교 3학년 재학 시절, 모두 같은 반이었다.
빵꾸와 나는 본래 초등학생 때부터 알던 사이였으니 대학생이 되어서도 연락하게 되는 건 당연하고,
고3 시절에 창쿤하고도 많이 친해져서 (나도 오덕이 전염되었다. ㅎㅎ) 창쿤과 나 또한 대학생이 되어서도 연락하는 사이가 됐다.
그러나 불과 2~3년 전까지 창쿤과 빵꾸는 서로 친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그냥 연락 끊긴 사이였다.
한창 군대에 있을 시절, 그많던 (나름 친구라고 생각했던) 고등학교 같은 반 애들 중에 지금까지 남아있어서 편하게 아무 때나 '나와!'하고 부를 만한 친구가 한두명도 남지 않은 것을 생각해 보면서
인간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다시 생각하는 시간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무언가 나는 창쿤과도 진짜 친하고 빵꾸와도 친한데, 창쿤과 빵꾸는 서로 연락 끊긴 사이라는 게 아쉽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2020년 연말이었을 것이다. 창쿤과 빵꾸에게 각각 전화를 했다.
진지하게 서로 만나서 셋이서 다같이 친하게 지내보는 게 어떻겠냐고.
창쿤은 낯을 가리니까 조금 걱정했는데,
빵꾸도 애니를 좀 봤던 적이 있어서 그런지 (모노가타리 시리즈를 완주하고 돌려 본 적이 있는 하드한)
금새 서로 친해졌다.
쨌든, 나는 이 선택을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 보아도 참 잘 했다고 생각한다.
결국 이 선택이 없었으면 이 전국일주 또한 반쪽짜리가 되었을 테다.
2021년 7월 10일 토요일, 반 년 전부터 카톡 D-DAY로 설정해 놓을 정도로 오매불망 기다리고 바라보기만 했던 그 날을 단 하루 앞두고.
대충 싸놨던 짐을 심기일전의 마음으로 차곡차곡 가방 속에 담았다.
준비물이 뭐 있었는지는 자세히 기억이 안 난다.
자전거 짐받이 가방, 안장 가방, 핸들 가방, 핸드폰 거치 가방, 마스크, 두건, 헬멧, 여분 옷 상하의 약 2~3벌씩, 세면도구, 손 소독제, 휴지, 청테이프, 고무로프, 연장, 여분 타이어 튜브, 보조 배터리, 충전기, 일기장, 펜, 수건, 파스, (소중한 엉덩이 마찰을 줄여줄) 라이딩 크림, 썬크림, 썬스틱, 썬스프레이, 썬글라스, 상비약, 자전거 커버, 자전거 펑크 패치, 빨래집게, 빨래비누, 렌즈, 렌즈 세척액, 안경 등등의 잡다한 것.
당시에도 헷갈렸는데 지금 정확히 기억은 못 해내겠다.
가방 싸는 것이 귀찮아 학창시절엔 당일 아침 나가기 전이 되어서야 부랴부랴 가방을 싸고 그랬는데,
이때는 너무 설레여서 전날 새벽부터 일찍 일어나 전국일주를 간 내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부푼 마음을 안고 하나씩 가방을 쌌던 그 기분이 아직도 선명하다.
앞으로 시간이 날 때마다, 나의 새로운 이주지인 티스토리 블로그에
나의 뜨거웠던 청춘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될 전국일주의 일기를 올려 보고자 한다.
추억도 되뇌이고, 기억하고, 기록할겸 혹여 나와 같이 전국일주를 나지막이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을 독려하기 위해서 말이다.
나 또한 다른 누군가가 15년전...10년 전...5년 전...에 쓴 그러한 일지를 보고 전국일주의 꿈을 키웠고 마음을 다졌다.
내가 앞으로 이곳에 쓸 글 또한 다른 누군가의 꿈을 키우고, 소중하고 행복한 추억을 쌓도록 도와줄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국일주를 모두 마치고 약 한 달 후, 2021년 9월 25일 뒤풀이에서.